주워온 우주 (주워온 우주 전시 서문 2019.12 )


-송요비  기획자 



개인의 정체성, 여성의 성역할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과정은 누군가의 삶, 인생이 이렇게 많은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을 경험하기 전에는 미리 알지 못한다. 이전에 한 이탈리아 작가를 인터뷰했을 때 출산과 육아의 시간에 대해 그녀는 ‘난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왔을 때 외계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FK고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세상은 그대로이지만 작가 자신의 삶은 너무나도 크게 달라졌고 그 변화에 그 세상을 받아들여가며 위해 부모가 된 우리는 한 생명체를 키워가기 위해 큰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여가며 인생의 한 계단을 만들어 간다. 전장연 작가 또한 영국에서 육아시간 동안 작업과 단절된 시기를 지나 ‘오랜만에 작업실로 돌아왔을 때의 낯선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생명을 키워가는 과정에 여성의 시공간은 혼란의 순간이 휘몰아친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과정에서 엄마 이외의 정체성이 그대로 존재하려면 무척이나 큰 노력과 의지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를 만나고서야, 그 시간을 마주하고서야 실감할 수 있다. 전장연 작가 또한 한 인생의 엄청난 시공간의 변화를 겪어 내고 있음을 ‘주워온 우주’에서 시각화하였고 관객은 이를 통해 작가의 새로운 인생을 만난다. 인생의 큰 변화 후 개인전을 준비하며 기존의 작업 방식인 일상 사물을 이용하지만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던 아이의 장난감, 젖꼭지, 인형들을 여러 일상 사물들에 부착하거나 해체 후 결합 새로운 방식의 ‘설치’ 작품을 하는 등 다양한 첫 시도를 하게 된다. 이 요소들은 무척이나 생소하고 낯선 조합들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의 결합체가 되도록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이렇게 이질적 사물들의 결합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계속 작품을 바라보면서 시각적으로 익숙하게 되자 작은 섬세함이 다가온다. 작가는 ‘작가로서의 자신’과 ‘육아의 주체’가 된 자신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 인생의 현실을 작품으로 만들어 낸다.
개인의 정체성의 요소 중 하나인 성 역할 정체감(gender-role identity)은 한 개인을 특징짓는 성격 특성과 행동 특성의 집합체로, 개인이 자기 자신을 얼마만큼 남성적 또는 여성적 성격 특성을 소유하는지 평가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 역할 정체감은 온전히 개인의 내면에서만 비롯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영국의 교육 사회학자 휴즈(Hughes, 2010)에 따르면, 사실 성 역할은 사회의 주류에 의하여 가정된 정체성이다. 개인은 사실상 사회 또는 집단의 설정에 개인의 행동을 맞추어 성역할 정체감을 설정하는 ‘정체성 일치(identity congruence)’를 이룬다고 하였다. 여성들은 임신, 출산, 육아를 기점으로 내 몸과 단절되는 경험을 하며, ‘임신을 준비하는 몸’, ‘임신 기간 동안 아이를 보호하는 몸’, ‘출산 후 육아를 하기에 적합한 몸’으로 살아간다. 임신, 출산, 육아라는 것이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과정과 경험들 임에도 불구하고 구술자들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소외’되고, ‘타자화’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는 임신, 출산, 육아라는 사건이 ‘당연시’되고 ‘이의제기’해서는 안 되며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Adair, 1992) 또한 푸코는 이처럼 권력이 행사되는 지점으로서의 ‘몸’에 관심을 두고 순응적인 신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푸코는 특정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몸을 특정한 방식으로 훈육해 사회 문화적으로 수용 가능한 몸의 형태와 몸의 실천을 논의하고 있다(Foucault, 1979). 푸코가 말하는 ‘유순한 몸(docile body)’은 문화적 생활 규범에 의해 규제된 몸이다. 푸코는 시간, 공간, 일상생활의 조직과 규제에 의해서 우리의 몸은 훈련되고 형성되며, 그러한 몸 위에 역사적으로 지배적인 자아, 욕망, 남성성, 여성성이 새겨진다고 하였다.


북두칠성의 새로운 행성들


‘주워온 우주'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일상 사물을 스캐너에 스캔하여 프린트한 ‘주워온 밤’, ‘숨바꼭질’ ‘숨어든 귀’, 그리고 전시 공간에 철제 구조물로 세운 북두칠성, 그리고 그 북두칠성의 구조물을 구성하는 7종류의 변형된 사물 오브제들이다. 작가의 오랜 작업 방식을 이용한 사물을 스캐너에 스캔한 이미지들은 사진으로 찍은 오브제 보다 더 충실히 대상의 표현 질감을 드러낸다. 3점의 이미지는 유아 장난감 사물을 스캔한 이미지와 작가의 상상의 이미지 드로잉이 함께 물건의 원래 모습을 변경한다.
변형된 사물은 작가 자신의 삶의 모습을 비유하거나 모양과 기능으로 변모하면서 스스로 예술의 주체적 대상으로 변화하도록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작가가 모티브로 선택한 북두칠성은 하늘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를 도는 행성의 무리이다. 이 별자리는 인간의 수명을 주관한다고 믿어져 왔으며 민화에 따르면 우리는 북두칠성 신선의 점지를 받아 태어난다. 그런데 출생 과정만 북두칠성이 관여하는 것이 아니고 재래식 장묘 관 바닥에 깔기도 하며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도 북두칠성을 통한다고 믿었다. (박석재, 2013) 작가는 인생을 주관한다는 별자리를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오브제들로 7개의 행성을 탄생시켰다.

7개의 행성의 이름은 ‘토끼 발의 행운’, ‘가느다란 시간’, ‘손이 네개’, ‘유모차 엘베’, ‘유목 육아’, ‘우주적 조합’, ‘슈퍼 맘’ 이렇게 작가의 삶의 현실과 상상하는 현실을 은유하는 사물들의 유희적 결합들로 구성되었다.  <주워온 우주> 속 북두칠성의 가장 첫 행성은 ‘수퍼 맘’이라고 제목을 붙인 작품으로 남성 양복 재킷에 직접 자수작업으로 여성적인 매체를 남성의 양복에 새겨 넣은 오브제였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직접 자수하는 기술을 배워 실제 작업에 활용하였다. 작가는 수퍼 맘의 상징, 기저귀를 가는 행위의 이미지들을 새겨 넣었다. 마지막 7번째 행성의 이름은 ‘토끼 발의 행운'이다. 실제 흰 토끼 인형을 사용한 토끼 발은 오랜 전설 속에서 행운을 가져오는 장신구의 일종으로 수백 년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온 것이다. 작가는 두 이질적 요소인 우리 생활 속에 익숙하게 들어와 있는 일상 사물과 사회 속에 오래 내려져 온 이야기 속 미신과 토템의 속 아이템들을 작품에 동시에 적용해서 북두칠성의 한 행성으로 제작하였다. 토끼 인형의 머리는 가느다란 원형 철제 구조물 고리에 걸려 있으며 그 사이사이 유아들이 가지고 노는 플라스틱 화려한 색상을 한 원형 장난감을 작은 행성을 구성하는 세부요소로 사용한다. ‘손이 네개' , ‘유목육아' ‘ 유모차 엘베'는 작가의 삶에서 많은 비중을 가지게 된 ‘육아'를 하는 엄마로서의 여성이 된 모습을 형상화한다. 이뿐 아니라, ‘여성적' 아이템인 진주 목걸이와 털 직물, 그리고 그 사이사이는 아이가 엄마와 오랜 시간 보내는 시기를 상징하는 영아 젖꼭지가 붙여 있다. 또한, 육아와 거리가 먼 여성적 사물인 진주 목걸이는 아기 장난감과 동일한 등위로 다룬다. 이런 방식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대상을 만나는 관객은 여성의 우아함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이 한순간 육아하는 여성이라는 사회적 성 역할에 제 모습을 잃고 있음을 목격한다.


사물들의 선택과 결합_소비의 결과들


이 7개의 행성은 바닥도 벽면도 아닌 전시공간의 한중간에 마치 쇼핑을 위한 디스플레이 설치처럼 자리하고 있다. 한국 생활에서 혼자가 아닌 아이와 돌아온 후 “아이와 보내는 시간과 나 자신의 시간이 그리고 육아와 교육이 철저하게 자본과 소비에 연결된 현상”을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소비문화 안에서 개인의 경험들이 선택과 조형의 과정을 거치는 사물을 통해 전달되고 공유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물건들은 타인과 어떤 감정적으로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킬 때 완성되면서 공유를 위한 ‘사물적 표시’가 된다고 설명한다. 한국 사회의 강력한 소비 주체로 떠오른 엄마들은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여러 기관과 회사의 타깃 고객층으로 분류되어 많은 소비를 위한 정보의 홍수를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마치 쇼윈도의 소비 대상을 바라보듯이 관객이 작품을 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하였다. 아이들 교육, 건강 등 모든 분야의 상품들은 아이를 가지는 순간부터 쇼핑과 선택을 고민하는 소비자로의 일상을 표현하였다. <주워온 우주> 전을 통해 인생의 여러 계단을 올라가는 한순간을 기록한 어려움과 변화의 작품들을 만나는 일은 잊을 수 없는 바로 몇 년 전의 나 자신을 만나고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알 수 없는 혼돈과 여러 낯선 시간으로 가득한 시기에 더 성숙해져 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었던 간절함을 떠올렸다. 육아가 여전히 사회적으로도 남성들과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이야기되지만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주워온 밤>에서 아이가 주워온 여러 사물들을 스캔하고 프린트한 것은 아마도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기록처럼 박제되어 영원히 남을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또 사라지는 우주 속에 작은 사물을 찾으며 빛나는 행성처럼 빛나는 순간들이 되기를, 앞으로 작가의 작은 일상들이 작품의 요소로 등장하면서 공유되는 다음 순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