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고양 창작 레지던시 세미나
-조주리 큐레이터
작업 설명을 살피며(들으며) 저는 알 수 없는 작가의 성장기와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로 진입하는 삶의 추상적 단편들과 조각적 사물, 혹은 사물 -조각으로 대변되는 어떤 형상 사이의 공명을 느꼈고 그 점이 자못 흥미로웠습니다. 외견상 느꼈던 전장연의 작업의 첫인상은 매우 섬세하고 감각적이고, 아주 절묘하게 세련된 편입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나중에 깨달았어요.
매끈하게 머리를 묶고, 굽높이가 다른 스틸레토를 신고 있는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짝다리를 짚고 있는 뉴요커 여성 같은 아찔한 감각이었습니다. 뭔가 팽팽한데, 애잔함이 있다고 할까요. 전체적으로 깔끔한 얼굴인데, 뺨에 큼지막한 먼지가 묻어 있는 줄 모르고 있는 모습같기도 했고요. 저는 그게 처음 아방가르드 패션을 추구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다가왔다가, 실제로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어떤 여성의 분주함이나 결핍, 두려움의 요소일 수도 있다고 뒤늦게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기획자와 작가로 오며가며 알고 지낸 지 삼 년 차 정도 되었는데, 작업에 담긴 상세한 서사나 감정적인 부분을 이렇게 자세히 들었던 것은 처음입니다. 관람객으로서 늘 작업의 외관으로부터 작가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오늘부터 전장연 작가의 작업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더불어, 비슷한 시대를 공유해온 사람으로써 저의 일상 중 중요한 의미를 대리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을 붙이고 살아가야만 하는 어떤 사물의 형상과 그것들 간의 관계, 힘의 균형과 와해, 질감 같은 것들을 동시에 투영해 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떤 가시적인 리얼리즘의 세계라기 보다, 조각적 관찰과 사고를 통해 매개되는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사물에 투영된 나를 다시 바라보고, 그것을 조각이라 부를지 조각적 상황이라 부를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작업이 은폐하고 있는 생활상의 서사나 감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성, 출산, 육아, 창작 이런 키워드로 좁혀 생각하기 보다는 크게 보아, 현대인이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조각적 발견과 사고를 통해 재사유하는 셈입니다. 여기에서의 사물이란 단순한 오브제 뿐만 아니라 조각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물질문화, 시각문화 안에서의 합의된 물성과 디자인, 현대미술이 규정하는 온갖 종류의 조형적 어휘까지 포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저희가 이번 발표의 제목을<조각, 조각적, 조각적 삶, 삶의 조각> 뭐 이런 식으로 해보자고 이야기 했었던 것 같은데, 최종 제목이 정말 허식이 없는 간결함과 담백함을 담고 있어서 좋습니다. 오늘의 자리는 미술에 대한 담론적인 접근이나 조각 매체 자체에 대한 해석이기 보다, 결국에 작업이 작가 삶의 어떤 부산물이라는 점, 그리고 반대로 자신이 선택적으로 배열하고 조작적으로 구축한 사물의 풍경이 실제 삶에 대한 재인식이나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는 점을 말하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몇 가지 궁금한 점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작업 설명에 있어 주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 두 개념인 ‘정지된 추상’과 ‘서사적 조각’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숨고르고 정지’와 같은 최근 전시에서 ‘정지된 추상’과 같음 말들이 특히 직관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사적 조각’ 역시 앞서의 설명에서 잘 드러난 요소라고 생각되는데, 일반적으로 조각에서의 ‘서사’라는 것이 어떤 함의가 있을까요? 대상이나 상황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창작자 개인의 서사나 생활에서 오는 감정들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라고 단순하게 이해해도 될까요? 한편으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조각들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서사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작가노트에 아주 잘 기술되어 있는 것 같아요)
2. 원래 회화 작업에서 출발했고, 이후 조각 작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진 이미지를 함께 만들기도 했는데요. 평면 이미지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낯빛 시리즈 같은 경우는 절묘하게 평면과 입체 사이의 틈이라고 해야할까요? 그 부분에서 깊이감과 빛의 그라데이션이 표현된 부분이 특히 도드라져서, 어떤 중간적 매체처럼 보이는 지점도 있었습니다. 혹은 3차원의 사물을 매우 평평한 감각으로 보여주는 사진 프린트 작업도 있고요. 회화나 사진 작업도 종종 병행되는 것인지요. 혹은 조각에 좀더 집중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공간에 대응하는 일종의 가변 설치 방식으로도 볼 수 있고 어떤 것들은 파운드 오브제를 재배치한 것에 가까운 것들도 있는데요, 일련의 작업에 대하여 ‘조각’으로 규정하고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요?
3. 작업이 담고 있는 어떤 개인사적 기억이나 사물에 대한 대한 형태론적 인식, 현상학적 경험이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한편, ‘균형’ ‘붕괴’ ‘지지’ ‘평행’ ‘매달리기’ ‘기대기’와 같은 어떤 물리적 운동성과 재료의 물성, 그것들 간의 간격과 높낮이를 조율하는 형식적 실험 또한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또한 결과적인 형태를 보면 은근히 미술사 안에서의 조각적 클리쉐나 공공 조형물처럼 보이는 구조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점을 의도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머리끈, 파운데이션 퍼프, 헬스 기구와 같은 조각적 소재의 재발견은 한편으로,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하드한 소재를 주로 사용하는 기존 조각이 가진 추상성과 기념비성을 해체하는 특징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