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정지된 풍경여럿이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약속한 듯 멈춰 선 순간, 셔터가 작동하고 흩어지기 직전의 상태에 비유해 본다면 적절할까. 모인 사람들이 서로 낯선 사이라는 설정을 덧붙여서 말이다.
[1] 전장연의 최근 작품들은 주로 설치나 조각의 형식을 지니며 철판이나 철골 구조, 스프링, 패브릭 등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앞선 비유와 같이 하나 이상의 개체가 공간 속에서 일정한 거리와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을 통해 정지된 긴장의 장면을 형성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징적인 것은 ‘긴장’이라는 뾰족함을 위한 전장연의 조각은 과도하게 목적을 유지하려 애쓰거나 마지못해 견디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마치 불안정한 상태를 자주 겪어 일상적인 것이 되었거나 객관적인 상태에 도달했다는 듯 바닥과 벽을 지지하고 천장에 매달린 채 주어진 곳에 꼿꼿이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전장연은 물리적인 몸체를 지닌 조각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긴장을 발생시키고, 동시에 긴장을 의도하면서도 균형의 순간을 꾀한다. 다시 말해 그에게 긴장이란 오랜 시간 경로를 달리하여 반복되어온 것이며 균형은 반대급부에서 삶의 궤도를 유지하는 힘에 가까운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가죽의 굳은살 같은 단단한 표면을 그의 작품 일부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육중한 금속 파이프나 철판 위에 과감하게 입힌 민트나 핑크, 라일락, 무지갯빛이 주는 경쾌함을 마주하기도 한다. 미루어 보건대 전장연이 작업에서 다루고자 하는 긴장과 균형은 일반적인 의미를 벗어나, 둘 사이의 상호보완적인 관계와 그 안에서 삶을 수행하는 과정과 방식까지 종합하는 개념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삶의 수행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면, 개인이 사회에서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맡게 되는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역할과 그것을 모두 잘 해내는 일이라는 개념을 포괄한다. 같은 맥락에서 전장연의 근작과 개인전의 제목인 ‘발끝으로 선 낮’, ‘숨 고르고 정지’와 같은 표현들은 직접 경험했거나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불안에 대한 작가의 직유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출산과 육아, 그로 인한 공백, 성장하는 아이에 대한 관찰 등을 직접적으로 작업과 연결시킬 만큼 실생활에서의 역할 균형잡기는 그에게 중요한 주제로 드러나고 있다.
[2] 각각 다른 입장과 위치에서 본 많은 기억과 감각, 직관, 이미지, 행위와 같은 것들을 작가는 숨을 고른 뒤, 한자리에 모으거나 제작하고, 알맞은 자리를 지정해 주고, 장면을 만들어 타인에게 공개함으로써 현실의 사적 증거물들로 이루어진 광장을 만들어낸다.
끼어드는 사물들매체를 다루는 데에 있어 전장연은 2011년 전후부터 기존의 사물을 작품의 오브제로 변형시켜 또는 그대로 사용하였고, 2020년 이후로 커팅 가공된 철판, 철골 구조, 메탈 링 등에 사물을 접붙이는 방식을 통해 조각의 형식을 구사해왔다. 회화를 전공한 그가 익숙지 않은 3차원을 자신의 장으로 선택하는 몇몇 이유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조각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인 신체의 사용을 가장 주요한 것으로 들고자 한다. 손을 사용하여 공간 안에 무게를 지닌 가시적인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이 작가에게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입체라는 형식이 지닌 특징 즉 공간을 인식, 전달하는 실질적인 방식이자 구현한 형태를 사진과 같은 2차 공정이나 편집 없이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떤 것들을 사물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 조건은 무엇인가? 우선 전장연은 사물에 절대적인 의미나 특수한 개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꽃꽃이 책을 참고하여 다발을 만들되, 꽃 대신 여러 가지 오브제를 즉흥적으로 조합시킨 초기작 <오브젝트 드로잉>(2011)에서 헤드셋, 샤워볼, 케이블, 전구, 딱풀, 일회용 수저, 헤어롤 등은 일상적인 오브제로서 모두 ‘꽃’이라는 명제를 따른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멈춰 선 것들>(2011/2014)의 경우 머리띠, 동전과 백열전구, 화장품 케이스 등 크지 않은 사물이자 원래부터 설 수 없도록 만들어진 것들을 가지고 작가는 밑면을 평평하게 갈아 세워두었다. 개별 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당위보다 부여한 역할을 수행하는 개체로서의 의미가 우위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멈춰 선 것들>과 형식적으로 유사성을 지닌 <광장>(2011/2014)에서 전장연은 사각형 판위에 주워온 시계, 거울, 휴대용 랜턴 등의 사물들을 배치하며 시위를 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여기서 또다시 자명종이 특정한 정치적인 인물이나 정당을 상징한다거나, 거울이 어떤 지위나 성별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는 전면이 불투명한 거울, 시침과 초침이 보이지 않는 시계와 같이 사물의 기능을 차단함으로써 처음의 속성을 잃어버린 시위대의 상황을 표현하였다. 신체로서 여겨지는 사물에 대한 극명한 예시로서 전장연의 2014년 사진 작품 <인테리어 제스처> 시리즈에서는 사진으로 기록된 사물의 형태를 대체하거나 모방하는 몸을 제시하고 있다.
만약 전장연의 작업에서 사물이 신체라는 전제를 고정 값으로 둔다면, 가장 궁금해지는 부분은 작가의 표현으로 ‘끼어드는 사물들’이라고 일컫는 경우이다. 다수의 작품을 통틀어 작가는 화장 퍼프, 동전, 비타민 알약, 민트 캔디, 담배꽁초 등을 조각과 조각의 사이, 벽과 조각의 틈새, 면과 면이 만나는 접합 지점 등에 밀어 넣거나 작게 구기고 끼움으로써 새로운 상황을 연출하였다. 뒤틀리거나 눌린 사물들의 모습에서 조각의 무게를 가늠하게 되거나 미세한 사이 공간을 인지하기도 하고, 끼어든 사물의 색이나 형태가 부각되기도 한다. 보는 사람은 압력이 되는 조각과 선과 면 사이를 차지하는 오브제의 모습에서 그것을 욱여넣었을 신체의 감각을 전달받게 되는데, 작가는 이와 같은 끼어드는 사물들이 조각을 완성시키는 동시에 변수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3]<숨을 고르고 정지>(2022)에서는 <광장>, <멈춰 선 것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사각형 프레임이 공간의 구조로 확장된다. 스케일이 커지는 것과 더불어 제작의 측면에서는 철골 구조와 스프링에 패브릭이나 로프, 라텍스 밴드 등을 덧입히고 접합하여 대부분의 조각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잠깐의 공백과 10여 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전장연의 타임라인 전체를 두고 작품 간의 연결고리를 바라본다면 일관적인 관심사와 작가적 태도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정표와 같이, 조각 어딘가에 ‘끼어드는 사물들’을 위치시키고 나아가 입체-조각의 풍경을 구축함으로써 그는 정지의 순간만큼 몸을 현실로 데려왔다가 이내 가변의 시공으로 내보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1] 김정현은 전장연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정지의 재현이나 형식을 두고 사진적이라고 언급한다. 김정현, 「조각적, 사진적」 , (2021)
[2] 여성 작가로서의 출산과 육아가 작업에 미친 영향과 변화는 양효실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양효실, 「낮은 사물들로써 세워진 추상적 조각의 스토리텔링」 , (2022)
[3] 전장연 작가 노트, 포트폴리오에서 발췌. 원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선과 면 사이에 끼어드는 사물들은 그 구조를 돕는 동시에 방해하기도 한다. 마찰과 무게에 의해 조각의 형태를 완성하기도, 동시에 변수가 되기도 한다.”